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평가/부정적 평가/정치 (문단 편집) === [[제7대 대통령 선거]] === 1971년 4.27 대선은 특히 영남지역주의가 강하게 드러난 선거였다. 박정희는 [[경북]]에서 92만 표(박 133만 표, 김 41만 표) [[경남]]에서 58만 표(박 89만 표, 김 31만 표)를 이겼는데, 영남 지역 승리는 전체 승리 득표 94만 표보다 56만 표나 더 많은 것이었다. 반면 [[김대중]]은 박정희를 [[전북]]에서 23만 표(박 30만 표, 김 53만 표), [[전남]]에서 40만 표(박 47만 표, 김 87만 표) 그리고 서울에서 39만 표(박 80만 표, 김 119만 표)를 이겼다. 박정희는 이미 1967년 대선에서 [[윤보선]]에 비해 영남표만 1백 36만 표를 앞섰는데, 전국적으로 박정희가 이긴 116만표보다 20만 표나 웃도는 것이었다.[* [[박정희]]에 대한 [[경상도]] 몰표는 63년부터 조금씩 보이더니 67년 대선에서 완연히 나타나게 된다. 71년은 경상도 몰표가 완성된다. 그에 비해 [[전라도]]의 몰표는 87년에서야 나타나게 된다.][* 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동아일보사 1992, 319~320쪽)] [[민주공화당|공화당]] 국회의장인 [[이효상]]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발언을 하며 박정희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43000209204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4-30&officeId=00020&pageNo=4&printNo=15249&publishType=00020|#]][[https://books.google.co.kr/books?id=e7yYCwAAQBAJ&pg=PA125&lpg=PA125&dq=%EC%9D%B4%ED%9A%A8%EC%83%81+%EA%B7%9C%ED%83%84&source=bl&ots=hJW7pf3WYp&sig=F510qvSyz_501jd0fdCF1XJHRrw&hl=ko&sa=X&ved=0ahUKEwjFqd-mqI_TAhVIxbwKHYI4BtEQ6AEIHTAB#v=onepage&q=%EC%9D%B4%ED%9A%A8%EC%83%81%20%EA%B7%9C%ED%83%84&f=fals|#2]] 박정희는 대통령이자 공화당 총재로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여당·측근 정치인들을 비호하였다. 당시에 공화당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 피바람이 분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까지 했다.[[http://www.ilyosisa.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8019|#]][* 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동아일보사 1992, 305쪽)] 그 밖에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영남 지역 유세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경상도 대통령 아이가."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어쩔 끼고?" >"[[경상도]] 사람 쳐놓고 박 후보 안 찍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야!" >"1천만 명에 가까운 경상도가 주도하고 단결하면 선거 조금도 질 염려가 없다." >"경상도에서는 [[쌀밥]]에 뉘 섞이듯 야당 표가 나오면 곤란하니 여당 표로 통일하자." >"우리 지역이 단합하여 몰표를 밀어주지 않으면 저편에서 쏟아져 나올 상대방의 몰표를 당해낼 수 없다."[* 이상우 <박정권 18년:그 권력의 내막>([[동아일보]]사 1986, 343쪽)][* 이동형 [[https://books.google.co.kr/books?id=UtawBQAAQBAJ&pg=PT65&lpg=PT65&dq=%EB%AC%B8%EB%91%A5%EC%9D%B4%EA%B0%80+%EB%AC%B8%EB%91%A5%EC%9D%B4+%EC%95%88%EC%B0%8D%EC%9C%BC%EB%A9%B4+%EC%96%B4%EC%A9%94%EB%81%BC%EA%B3%A0&source=bl&ots=mYCgjmXlhE&sig=SrQA2sQpSz0-iFl7qNgsDuXiduY&hl=ko&sa=X&ved=0ahUKEwi13NbXsY_TAhXMgLwKHUkBC-4Q6AEIGjAA|<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2011][* 김교식 [[https://books.google.co.kr/books?id=T-Q9-pnca4AC&pg=PT1570&lpg=PT1570&dq=%EB%AC%B8%EB%91%A5%EC%9D%B4%EA%B0%80+%EB%AC%B8%EB%91%A5%EC%9D%B4+%EC%95%88%EC%B0%8D%EC%9C%BC%EB%A9%B4+%EC%96%B4%EC%A9%94%EB%81%BC%EA%B3%A0&source=bl&ots=kPg6dF7U7d&sig=w_mEYulFlLHalfhmI50lTG9Gn5Y&hl=ko&sa=X&ved=0ahUKEwi13NbXsY_TAhXMgLwKHUkBC-4Q6AEIHTAB#v=onepage&q=%EB%AC%B8%EB%91%A5%EC%9D%B4%EA%B0%80%20%EB%AC%B8%EB%91%A5%EC%9D%B4%20%EC%95%88%EC%B0%8D%EC%9C%BC%EB%A9%B4%20%EC%96%B4%EC%A9%94%EB%81%BC%EA%B3%A0&f=false|<다큐멘터리 드라마, 박정희>]], 2012] [[중앙정보부]] 역시 "[[김대중]]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 전역에 피의 보복이 있을 거다"라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아울러 "우리가 똘똘 몽쳐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서울]]이고 [[경기도]]고 [[전라도]]고 우리 표를 빼낼 곳이 없다. 우리가 몰표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지도자, 우리 조국의 기수를 건져내야 한다."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경상도 지역의 공무원들에겐 "김대중이가 만약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라고 부추겼다. 아울러 공화당원과 경찰, 중앙정보부 요원과 조직폭력배들은 서울에서 영남 지역으로 내려온 참관인들에게 "이 전라도 놈(김대중 후보를 지칭) 앞장이들아, 모두 꺼져버려라!"라고 스피커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협박하고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을 모조리 쫒아버리곤 했다.[[https://books.google.co.kr/books?id=3dakDQAAQBAJ&pg=PT500&lpg=PT500&dq=1971%EB%85%84+%EA%B0%90%EC%8B%9C%EB%8B%A8+%EC%B0%B8%EA%B4%80%EC%9D%B8&source=bl&ots=zn5ysBd-KJ&sig=9IkMglM8dCD3UcxbWP5rHSvDKsE&hl=ko&sa=X&ved=0ahUKEwiRsLPerI_TAhUJgLwKHaSrDSIQ6AEIHDAB#v=onepage&q=1971%EB%85%84%20%EA%B0%90%EC%8B%9C%EB%8B%A8%20%EC%B0%B8%EA%B4%80%EC%9D%B8&f=fals|#]][[https://books.google.co.kr/books?id=PQRNCwAAQBAJ&pg=PT140&lpg=PT140&dq=1971%EB%85%84+%EC%84%A0%EA%B1%B0+%EC%A7%80%EC%97%AD%EA%B0%90%EC%A0%95&source=bl&ots=xb2JriEjYD&sig=DDJqy9S6pIPN3Vm75gTyJmSrOzE&hl=ko&sa=X&ved=0ahUKEwjg7dKCrY_TAhXGUrwKHb_nBd8Q6AEISzAI#v=onepage&q=1971%EB%85%84%20%EC%84%A0%EA%B1%B0%20%EC%A7%80%EC%97%AD%EA%B0%90%EC%A0%95&f=fals|#2]][[https://books.google.co.kr/books?id=0j3ZDQAAQBAJ&pg=PT334&lpg=PT334&dq=1971%EB%85%84+%EC%84%A0%EA%B1%B0+%EC%A7%80%EC%97%AD%EA%B0%90%EC%A0%95&source=bl&ots=pP455TmjPi&sig=02dX3fF1sORb5AcPAAnsqgaXf3M&hl=ko&sa=X&ved=0ahUKEwjg7dKCrY_TAhXGUrwKHb_nBd8Q6AEITjAJ#v=onepage&q=1971%EB%85%84%20%EC%84%A0%EA%B1%B0%20%EC%A7%80%EC%97%AD%EA%B0%90%EC%A0%95&f=false|#3]][[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6906|#4]] 이 때문에 영남 지역에는 참관인들이 아예 투표소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영남 지역 야당 인사들은 "이 선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인데 당신은 왜 전라도놈 앞잡이 노릇을 하고 다니느냐?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이 마을에서 없어져라!"는 폭언을 들으며 구타, 협박을 당하였다. 혹은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하여, 투표 당일 야관 참관인으로 참석 못하게끔 방해하였다.[* 김옥두 <고난과 한길에도 희망은 있다>(인동 1999, 86~87쪽)] 심지어 [[중앙정보부]]는 영남 지역에서 '호남에서 영남 물건을 사지 않기로 하였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선거 막바지에 [[대구시]]에선 "호남인들이여 단결하라", "[[백제]]권 대동 단결" 같은 유인물이 [[호남향우회]] 명의로 나돌아다녔다. "럭키약을 사지 말자"는 유인물도 유권자들의 집에 대량 살포되었다. "호남에서는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 "[[전라도]]에서는 [[김대중]]이 발 씻는 물까지 마신다"라는 흑색선전도 난무했다. [[부산]]에서도 "호남 후보에게 몰표를 주자",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때는 왔다. 전라도 사람은 뭉쳐라"라는 구호가 [[전봇대]]에 나붙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동아일보사 1992, 267쪽) ; 이상우 <박정권 18년:그 권력의 내막>(동아일보사 1986, 344쪽)] 중앙정보부는 [[김대중]]의 자택에서 폭발물을 터트린 뒤, 당시 김대중의 '선거전략 귀재'로 불렸던 [[엄창록]]을 연행하여 회유하였는데, 김대중의 측근 [[권노갑]]은 "현지 여론이 하루 아침에 들끓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없어 손쓸 겨를도 없었다. 아 이게 자취를 감춘 엄창록의 수작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충식 위의 책 267쪽] 이 같은 여당의 지역감정 조장 전략을 [[동아일보]] 1971년 5월 1일자 칼럼을 통해 "[[메뚜기]] 이마만도 못한 곳에서 이렇듯 민족분열을 꾀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아무리 정치가 좋고 대통령이 자리가 탐난다 할지라도, 민족을 분열하여 가면서까지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누려야만 할 것인가?"라고 박정희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김옥두 <고난과 한길에도 희망은 있다>(인동 1999, 89쪽에서 재인용)] 원래 호남은 보수성향이 강했었고,[* 2,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을 찍은 곳이 호남이다.] 김대중이 출마했어도 현재의 PK 지역처럼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조금 많은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호남을 완전히 갈라놓은 [[13대 대선|사건]] 때문에 현재의 정치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고 [[5.18 민주화운동]]과 [[13대 대선]]으로 인해 보수정당은 호남에서 10%도 못 받는 처지가 되었다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호남지역 광역단체장에 출마했던 3명이 모두 15%[* 선거비 전액 보전 하한선]를 넘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